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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 몸과 몸이 닿는 순간을 시즌 테마로 그리다

관능과 가벼움으로 돌아온 두 번째 시즌

SoyulEditor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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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과 가벼움으로 돌아온 두 번째 시즌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이끄는 펜디의 2027년 봄여름 컬렉션이 관능성과 가벼움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년 전 취임 후 처음 선보인 무대가 거의 전체를 검정으로 채운 절제된 테일러드로 강한 리셋을 알렸던 것과 달리, 이번 두 번째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은 그 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몸과 몸이 맞닿는 순간의 감각을 옷으로 옮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전환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순한 무드 변화가 아니라, 옷 자체보다 그 옷을 만드는 이유를 매 시즌 새로 정의해온 키우리 특유의 작업 방식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디올에서는 페미니즘을, 펜디 데뷔 컬렉션에서는 가업을 물려받은 다섯 자매의 연대를 주제로 삼았던 그가 이번에는 미국 시인 에드워드 에스틀린 커밍스의 시구 하나를 메시지로 내세웠다는 사실은, 이 컬렉션이 계절마다 소비되는 무드가 아니라 몸과 옷의 관계를 계속 다시 묻는 연작의 한 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이 달라졌나

가장 구체적으로 달라진 지점은 실루엣과 소재의 쓰임이다. 이번 컬렉션은 숙녀의 침실을 연상시키는 슬립드레스, 레이스를 겹친 실크 새틴 브라톱과 퀼로트형 페티코트, 그 위에 걸치는 가운, 레이스 롬퍼, 댄스드레스를 연달아 등장시켰다. 기조는 여전히 검정이지만 여성스러움을 끌어올리는 파스텔 컬러와, 그와 상반되는 디스코풍의 비트를 더하기 위한 레오파드 무늬가 양념처럼 섞여 들어갔다. 첫 번째 룩은 반년 전 시즌의 턱시도 셔츠를 하네스가 달린 비브톱으로 변형한 것이어서, 전작과의 연속성을 의도적으로 남겨두었다는 점도 읽을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펜디 가문이 모피를 대하는 태도다. 키우리는 다섯 자매에게 모피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가벼움과 관능성, 그리고 신체 자체에 극히 가까운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펜디의 뿌리인 모피가 이번 시즌 거미줄처럼 섬세한 실로 짠 여유로운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컬렉션은 겉으로 드러나는 색과 무늬의 변화보다, 몸에 가장 가까운 옷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소재 차원에서부터 다시 짠 결과에 가깝다.

왜 지금인가

이 변화를 반년 주기의 자연스러운 무드 전환으로만 읽기는 아깝다. 키우리는 취임 첫 시즌에 절제된 테일러드로 규율을 세우고, 두 번째 시즌에 그 규율 위에서 관능과 가벼움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펜디를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브랜드를 재정의하기보다, 시즌마다 새로운 아키타입을 하나씩 더해가며 브랜드의 어휘를 넓히는 접근이다. 디올에서 페미니즘을, 펜디 데뷔작에서 자매의 연대를 다뤘던 그가 이번에는 연인의 몸이 자신의 몸과 겹칠 때의 감각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옷을 이야기의 결과물이 아니라 몸과 맺는 관계의 언어로 다루는 태도가 매 컬렉션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쿠튀르 아틀리에를 확장하며 이전보다 섬세한 기법을 옷 안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번 시즌을 가벼움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없게 만든다. 속옷에 가까운 형태의 옷들이 오히려 더 정교한 손기술을 요구한다는 역설이, 지금 펜디가 서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다음에 볼 것

연출 면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번 쇼는 무수한 형광등이 비추는 공간을 속옷 차림으로 걷는 모델들을, 매직미러 너머로 지켜보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1970년대 이탈리아 조각가 루치아노 파브로의 설치작품 미러 큐브에서 착안한 연출로, 당시에는 관객과 퍼포머의 경계를 흐리는 실험적 시도로 평가받았던 아이디어다. 관객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그 안의 모델을 동시에 보게 되는 구조였지만, 몸과 몸이 겹치는 감각을 표현하려던 컬렉션의 메시지와는 반대로 매직미러라는 커다란 벽이 관객과 모델 사이를 오히려 갈라놓았다는 인상을 남겼다. 다음 시즌 키우리가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힐지, 그리고 이번 시즌 확인된 속옷 실루엣과 모피의 재해석이 실제 매장에 걸리는 옷으로 어떻게 다듬어질지가 이어서 확인할 지점이다. 규율에서 관능으로, 다시 그 관능을 몸에 오래 남을 옷으로 만드는 다음 단계까지, 펜디의 아키타입 확장은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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