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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님을 쿠튀르로 바꾼 포포바, 오래 입는 옷의 조건

런던이 주목한 신예가 다시 데님을 택한 이유

SoyulEditor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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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이 주목한 신예가 다시 데님을 택한 이유

런던 패션위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신진 디자이너 마샤 포포바(MASHA POPOVA)가 2027년 봄·여름(2027 SS) 컬렉션을 공개했다. 오데사에서 보낸 성장기의 기억과 소비에트 후기 특유의 질감을 80~90년대 SF·공포 영화의 색감으로 번역해온 그가 이번에도 데님을 중심에 세웠다는 점이 눈에 띈다. 데님은 패션위크 런웨이보다는 매일 손이 가는 옷장 안쪽, 가장 많이 세탁하고 가장 오래 입는 옷에 가깝다. 그런 재료를 손염색과 구조적 쿠튀르 기법으로 다시 짜는 작업을 매 시즌 반복해온 디자이너가, 두아 리파·빌리 아일리시·벨라 하디드·카일리 제너 같은 이름들의 반복 착용으로 입증을 쌓고 데지구알·리복과의 협업으로 상업적 접점을 넓혀가는 지금 시점에 다시 데님으로 돌아온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에 가깝다. 유행이 한 계절 만에 교체되는 흐름 속에서, 이번 발표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사례로 읽힌다. 한 계절 쓰고 버리는 옷과 계절이 지나도 다시 꺼내 입는 옷의 경계가 어디서 갈리는지를 묻는다면, 이번 컬렉션은 그 답의 실마리를 손끝의 작업량에서 찾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2027 SS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V자로 허리선을 편향되게 자른 데님 팬츠다. 기존 데님의 정석이던 수평 허리선을 과감히 비틀어, 입는 사람의 몸에 따라 선이 다르게 떨어지도록 설계했다. 여기에 번아웃(burn-out) 기법으로 코튼 원단에 야자수 모티프를 태워 새긴 피스가 더해지면서, 포포바 특유의 이국적이면서도 다소 황량한 무드가 이어졌다. 재킷에서는 스티칭 구조만으로 입체감을 만든 '광택 폭탄(gloss bomb)' 소재가 등장해, 염색이나 코팅 없이도 표면이 빛을 반사하도록 설계한 점이 이전 시즌보다 한층 정교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죽에 직접 페인트를 입힌 트렌치코트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가죽 가공이 광택이나 질감 보존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업은 표면 자체를 캔버스처럼 다뤄 손으로 그린 흔적을 그대로 남겼다. CSM(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메종 마르지엘라·셀린에서 인턴십을 거친 이력이,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짜는 이번 시즌의 기법적 완성도에 그대로 묻어난다는 점도 달라진 지점이다. 염색부터 재단, 스티칭까지 한 점 한 점 손으로 거치는 공정이 늘었다는 것은 결국 대량 생산 속도를 포기하고 내구성과 디테일의 밀도를 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 지금인가

런던 패션위크가 신진 디자이너를 공식 라인업에 올리는 방식 자체가 최근 몇 시즌 사이 더 까다로워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포바가 정규 참가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작지 않은 신호다. 패스트패션이 한 계절짜리 트렌드를 저가로 찍어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손염색과 수작업 쿠튀르 기법으로 만든 데님 한 점이 갖는 희소성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두아 리파·빌리 아일리시·벨라 하디드·카일리 제너처럼 스타일에 대한 발언권이 큰 셀러브리티들이 특정 시즌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그의 옷을 선택해온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한 번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반복해서 꺼내 입을 만한 한 벌로 선택받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데지구알·리복이라는, 각각 프린트 중심 캐주얼과 퍼포먼스 스포츠웨어라는 전혀 다른 영역의 브랜드와 연이어 협업을 맺었다는 점은, 쿠튀르적 희소성과 대량 유통 가능성을 동시에 검증받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통째로 갈아치우는 소비 방식에 피로를 느끼는 쪽이 늘고 있는 지금, 오래 입을 한 벌을 고르는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 컬렉션은 유독 시의적이다. 디자이너 개인의 서사와 손끝 공정이 소비자에게 설득력을 갖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지금과 맞아떨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음에 볼 것

이번 발표로 확인된 것은 2027 SS 컬렉션의 룩과 소재, 기법 정도이고, 실제 판매 시점과 유통 범위는 아직 뒤따라야 할 정보다. 보통 이런 프리뷰는 실제 판매 시즌보다 반 년 이상 앞서 공개되는 만큼, 이 라인이 매장과 온라인에 풀리는 시점과 가격대를 함께 확인해볼 가치가 있다. 데지구알·리복과의 협업이 이번 시즌 이후에도 이어지는 라인으로 확장되는지, 혹은 단발성 캡슐로 끝나는지도 지켜볼 지점이다. 협업이 이어진다면 쿠튀르 기법을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대로 옮기는 실험이 본격화된다는 뜻이고, 그렇지 않다면 포포바의 본 라인이 여전히 소량 생산 중심의 희소성을 지키는 쪽으로 간다는 뜻이 된다. 셀러브리티들의 반복 착용이 이번 시즌에도 이어질지, 그리고 그 반복이 단순한 협찬을 넘어 실제 구매로 연결되는지도 눈여겨볼 만하다. 결국 이 컬렉션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매 시즌 전부 새로 사는 옷장과, 몇 벌을 오래 다루며 유지하는 옷장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인가. 포포바의 다음 행보가 그 답에 조금 더 가까운 힌트를 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손에 넣을 수 없더라도, 손이 많이 들어간 옷이 왜 오래 가는지를 눈으로 확인해두는 것만으로도 다음 옷장 정리의 기준이 하나 늘어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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