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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사과 한 알에서 시작된 무게의 미학

파리에서 증명한 일상 의식의 무게

SoyulEditor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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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증명한 일상 의식의 무게

2026년 LVMH 프라이즈를 거머쥔 벨기에 디자이너 줄리 켈겐스가 파리패션위크 2027년 봄여름 컬렉션으로 돌아왔다. 컬렉션명은 '하루의 사과(Apple of the Day)'. 제목만 보면 소박하고 낯설게 들리지만, 그 배경은 지극히 사소한 습관에서 출발한다. 켈겐스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사과 한 개를 먹는 개인적인 의식을 오래 지켜 왔고, 이번 컬렉션은 그 작은 반복에서 출발해 '무게'와 '중력'이라는 주제로 확장됐다. 떨어짐이 부족함일 수도 있고, 압박일 수도 있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심지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다층적인 해석을 옷으로 풀어낸 것이다. 갓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신인 디자이너가 곧바로 내놓은 첫 정규 컬렉션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이 가지만, 더 흥미로운 건 그가 무게를 짓누르는 압박이 아니라 발을 땅에 붙여주는 힘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디올, 발렌시아가, 샤넬 같은 대형 하우스들이 같은 주간 같은 도시에서 화려한 볼륨과 완성도를 자랑할 때, 켈겐스는 정반대 방향인 '무너짐'과 '가라앉음'을 무대에 올려 오히려 더 또렷하게 존재감을 남겼다. 화려함으로 시선을 끌기보다, 하루하루 반복해 온 사소한 습관을 무대의 언어로 바꿔 놓은 셈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옷이 몸에 붙어 있지 않고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린다는 점이다. 로크로치 나일론 타이츠와 데님, 저지, 슈트 소재들은 하나같이 땅을 향해 끌어당겨진 듯한 실루엣으로 재단됐고, 어깨선은 몸에서 슬쩍 벗겨져 떨어지듯 표현됐다. 원래 어깨는 옷의 형태를 지탱하는 지점인데, 이번 컬렉션에서는 그 지지대 역할을 일부러 무너뜨려 옷 전체가 아래로 쏠리는 인상을 만들었다. 에델바이스 자수 장식조차 꼿꼿이 서 있는 대신 아래로 축 늘어지도록 디자인됐다. 프롬 드레스는 봉긋한 볼륨을 유지하는 대신 스커트 형태로 무너져 내렸고, 스팽글 브라는 속을 비워 윤곽선만 남긴 채 껍데기처럼 걸쳐졌다. 드레스 밑단에는 테이블보를 고정할 때 쓰는 무게추를 실제로 달아, 옷감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아래로 당겨지도록 연출했다. 가벼운 순간도 있었다. 슈퍼오간자 원단 안에 안료와 스팽글 조각, 콩주머니처럼 채운 진주알을 넣어, 모델이 걸을 때마다 옷 안에서 무게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국을 남기도록 했다. 보통의 런웨이가 곧고 단단하게 서 있는 실루엣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이번 무대는 정반대로 무게가 옷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당기는지를 관객 눈앞에서 그대로 증명하는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힘을 주어 세우는 대신 무게를 인정하고 흘려보내는 태도가, 옷 한 벌 한 벌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왜 지금인가

켈겐스는 2024년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비교적 신생 디자이너다.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출신으로, 앤트워프 6로 대표되는 벨기에 디자이너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아 왔고 실제로 알라이아와 메릴 로게 같은 브랜드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런 그가 2026년 LVMH 프라이즈에서 2,400명이 넘는 지원자를 제치고 최종 수상자가 됐다는 사실은 이번 무대가 지닌 무게를 다르게 만든다. LVMH 프라이즈는 40만 유로의 상금과 1년간 LVMH 산하 전문가들의 밀착 멘토링을 함께 제공하는, 업계에서 신진 디자이너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발판 중 하나로 꼽힌다. 수상 직후 곧바로 파리패션위크 정규 시즌에 새 컬렉션을 올리는 흐름은 전형적인 수상자의 다음 행보이기도 하다. 이번 SS27 시즌은 디올, 발렌시아가, 샤넬 등 대형 하우스가 함께 참여하는 파리패션위크 주요 주간에 열렸다. 이런 자리에서 신인 디자이너가 주목을 받으려면 화려함과 물량으로 맞서기보다 자신만의 언어로 승부하는 편이 유리하다. 매일 밤 사과를 먹는 사소한 습관을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으로 확장한 선택은, 반복되는 일상의 리추얼이 결국 오래가는 창작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대형 하우스들의 화제성과 정면으로 겨루는 대신, 자신만 가진 일상의 습관을 무기로 삼은 셈이다.

다음에 볼 것

아직 가격이나 정식 출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고, 전체 룩은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컬렉션이 의미 있는 건 단발성 화제가 아니라 이후 1년간 이어질 LVMH 멘토링 기간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켈겐스가 이번 시즌에 던진 '무게'와 '낙하'라는 개념을 다음 컬렉션에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그리고 멘토링을 거치며 그의 만듦새가 어떻게 다듬어질지가 앞으로 지켜볼 지점이다. 뉴턴의 사과와 자신이 매일 먹는 사과를 겹쳐 놓은 것처럼, 그는 사소해 보이는 반복 행위에서 큰 개념을 끌어내는 방식을 이미 증명했다. 잠들기 전 사과 한 개를 먹는 습관처럼,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루틴이 매일 쌓이면 언젠가 자신만의 언어가 된다는 사실은 옷을 만드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에서 무엇을 매일 반복할지, 그리고 그 반복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가 결국 그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는 점에서, 이번 컬렉션은 패션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의식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꾸준함이 쌓여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화려한 신상보다 오래 다듬은 루틴 쪽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오래 유지할 만한 건 값비싼 새 옷이 아니라, 매일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작은 습관 쪽이라는 사실을 이번 무대가 다시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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