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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공화국광장을 이민자에게 내준 이유

가족을 런웨이에 세운 패션위크의 파격

SoyulEditor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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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런웨이에 세운 패션위크의 파격

파리 패션위크는 매 시즌 미술관, 궁전, 폐공장 같은 통제된 공간을 빌려 쇼를 열어 왔다. 그런데 파리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광장, 플라스 드 라 레퓌블리크를 패션쇼 무대로 통째로 내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몬트리올 출신 디자이너 스티븐 라지 바스카란과 한나 로즈가 이끄는 매티에르 페칼레스는 2027년 봄여름 컬렉션 '나인티 나인 퍼센트'를 이 광장에서 발표하며, 99명의 유색인종 모델을 세웠는데 그중 상당수가 다름 아닌 디자이너 자신의 가족과 친구, 오랜 협업자였다. 매 시즌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 캐스팅하는 것이 관행인 패션위크에서, 이미 알고 지낸 사람들을 그대로 무대에 세우는 선택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대목이다. 지난 시즌 부와 권력이 몰고 다니는 탐욕을 비꼰 '원 퍼센트' 컬렉션의 반대편 이야기를, 이번엔 실제 그 다수에 속한 사람들의 얼굴로 직접 증언하게 한 셈이다. 전 세계에서 이민자들이 표적이 되고 위축되어 살아가는 지금 이 시점에, 패션위크라는 가장 상업적이어야 할 무대 한복판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결코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무엇이 달라졌나

플라스 드 라 레퓌블리크는 그동안 패션쇼가 아니라 시위와 추모, 집회의 무대였다. 마리옹 광장이나 콩코르드 광장과 달리 이곳은 파리 시민들의 정치적 기억이 유독 짙게 쌓인 장소이기 때문에, 이 자리를 상업적 쇼에 내준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선택이다. 그 상징성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살린 채 옷을 입힌 것이 이번 쇼의 핵심이다. 쇼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됐는데, 그 시작인 'FAMILY' 챕터에서는 흰 옷을 입은 행렬이 브랜드 특유의 넉넉한 실루엣을 그대로 살린 채 광장 한복판으로 걸어 나왔다. 튤 소재로 감싼 블레이저를 볼륨감 있는 매칭 스커트 위에 겹쳐 입은 룩은 크리스티안 루부탱과 처음으로 손잡은 신발, 곡선형 힐에 플립플롭을 얹은 새로운 디자인으로 무게중심을 잡았다. 해변이나 시장에서나 신는 노동계급의 슬리퍼 형태를 하이힐이라는 가장 권위적인 형식 안에 밀어 넣은 이 협업은, 단순한 이종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을 넘어 누구의 신발이 런웨이에 오를 자격이 있는지를 되묻는 장치로 읽힌다. 챕터의 마지막은 바스카란이 자신의 어머니, 자매, 조카와 나란히 흰 옷을 입고 걸어 나오는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전문 모델을 세우는 대신 실제 가족을 무대에 세운 이 선택이야말로 이번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왜 지금인가

이 쇼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단발성 화제성이 아니라 두 시즌에 걸쳐 이어지는 서사의 연속성에 있다. 지난 시즌 '원 퍼센트'가 부와 권력을 쥔 소수의 탐욕을 조명했다면, 이번 '나인티 나인 퍼센트'는 그 반대편, 즉 목소리를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이야기를 정확히 겨냥해 되받아친다. 한 시즌짜리 이벤트성 메시지로 끝나지 않고 시즌을 거듭하며 하나의 논지를 완성해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 브랜드는 매 시즌 소재만 바꿔가며 순간의 자극을 노리는 여느 화제성 쇼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바스카란이 몬트리올의 저소득층 주택가에서 여러 문화와 종교가 뒤섞인 환경 속에 자란 개인사를 매 컬렉션의 뼈대로 계속 가져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실제로 겪은 환경을 시즌마다 다른 각도로 되짚는 작업은 한 번의 충격보다 오래 지속 가능한 창작 태도에 가깝다.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를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점이 겹치면서, 패션위크라는 가장 상업적인 무대가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발언대로 뒤바뀐 셈이다. 캐스팅에 가족과 친구, 협업자를 불러들이는 방식 역시 매 시즌 소모되고 교체되는 전문 모델 캐스팅 관행과 대비되며, 브랜드와 커뮤니티의 관계를 일회성 홍보가 아니라 계속 함께 가는 관계로 유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국 이 쇼가 지금 이 시점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쌓여온 개인사와 사회적 분위기가 동시에 임계점에 다다른 결과에 가깝다.

다음에 볼 것

이번 쇼가 던진 질문은 다음 시즌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원 퍼센트'에서 '나인티 나인 퍼센트'로 이어진 흐름을 보면, 이 브랜드는 한 번의 컬렉션을 발표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즌에 걸쳐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다음 시즌에 이 서사가 어떤 이름과 주제로 이어질지, 그리고 크리스티안 루부탱과의 협업이 이번 플립플롭 힐 한 켤레로 끝날지 아니면 정식 라인으로 확장될지는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지점은 캐스팅 방식이다. 가족과 친구, 협업자를 모델로 세우는 이 방식이 이번 한 번의 파격으로 그칠지, 아니면 매 시즌 반복되며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굳어질지에 따라 이 쇼가 갖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한 번의 이벤트는 화제가 되지만, 같은 태도를 시즌마다 되풀이하는 것이야말로 오래 유지할 가치가 있는 루틴이 된다. 매티에르 페칼레스가 이 실험을 다음 시즌에도 이어간다면, 파리 패션위크에 매 시즌 돌아오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스펙터클을 찾는 일이 아니라 한 디자이너가 자신의 뿌리를 계속 증언하는, 계절마다 돌아오는 하나의 의식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됐을 때 이 쇼는 '파격적이었던 한 시즌'이 아니라 '오래 지켜본 사람만 아는 태도'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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